도장 없는데 사인해도 되나요
계약서 앞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질문 세 개입니다.
도장 없는데 사인해도 되나요. 이거 막도장인데 괜찮아요. 인감증명서도 떼와야 하나요.
하나씩 보겠습니다.
사인만 해도 되나
됩니다.
애초에 계약은 도장이 없어도 성립합니다. 우리 법은 계약의 방식을 자유롭게 두고 있어서, 구두로 한 약속도 계약입니다. "다음 주까지 100만원에 해드릴게요"라고 말한 순간 계약이 생깁니다.
그럼 도장은 왜 찍느냐. 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중에 증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분쟁이 생겨 재판까지 갔다고 해봅시다. 상대가 이렇게 나옵니다.
"그 계약서, 제가 쓴 거 아닌데요."
이때 민사소송법 제358조가 작동합니다. 사문서에 본인의 서명이나 날인 또는 무인(지장)이 있으면 진정하게 작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서명이나 날인 또는"입니다. 셋 중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서명만 해도 되고, 도장만 찍어도 되고, 지장만 찍어도 되고요.
추정이 걸리면 입증 책임이 뒤집힙니다. 내가 "내가 쓴 게 맞다"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내가 쓴 게 아니다"를 증명해야 합니다. 실무에서 이 차이가 큽니다.
막도장도 되나
됩니다. 법에서 "인감도장이어야 한다"고 정해둔 경우가 아니면, 문구점에서 3천원 주고 판 도장도 효력은 같습니다.
인감도장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도장 자체가 아니라 인감증명서 때문입니다. 주민센터에 등록된 도장이라는 걸 공적으로 확인해주는 서류죠. "이 도장은 분명히 그 사람 것"이라는 제3자의 보증이 붙는 겁니다.
그래서 인감증명서가 요구되는 건 등기나 등록이 따라붙는 거래로 한정됩니다. 부동산 매매, 소유권 이전, 자동차 명의 이전 같은 것들이요.
일반 거래 계약서나 근로계약서, 차용증에는 거기까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도장을 잃어버렸거나 아예 등록을 안 해두셨다면 본인서명사실확인서라는 것도 있습니다. 2012년부터 생긴 제도인데, 도장을 등록하는 대신 주민센터에서 직접 서명하고 확인서를 받습니다. 인감증명서와 같은 효력입니다. 신분증만 들고 가면 됩니다.
자주 놓치는 세 가지
간인. 계약서가 두 장 이상이면 장과 장 사이에 걸쳐서 도장을 찍습니다. 안 찍으면 중간 장을 바꿔치기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금액이 적힌 장만 슬쩍 교체당하는 사고가 실제로 있습니다. 양쪽 다 찍어야 합니다.
정정인. 숫자나 글자를 고쳤으면 그 자리에 도장을 찍고 "2자 정정"처럼 적습니다. 수정테이프로 덮어버리면 나중에 누가 고쳤느냐로 다툼이 생깁니다. 사실 고칠 일이 생기면 그냥 다시 출력하는 게 제일 깔끔합니다.
원본 부수. 당사자 수만큼 만들어서 각자 한 부씩 가져갑니다. 한 부만 만들어서 상대가 보관하면, 그 사람이 나중에 안 보여줄 때 방법이 없습니다.
전자서명은
2020년에 전자서명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공인인증서 제도가 폐지됐습니다. 지금은 공인이냐 사설이냐 구분 없이 전자서명에 법적 효력이 인정됩니다.
다만 분쟁 가능성이 있는 계약이라면, 쓰려는 서비스가 서명 시각과 서명자 정보를 로그로 남겨주는지 확인하세요. 그 기록이 있어야 나중에 증명이 됩니다. 그림판으로 그린 사인 이미지를 PDF에 붙여둔 건 효력을 다투기 쉽습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법적으로는 하나만 있어도 되지만, 저는 서명과 도장을 둘 다 받으시라고 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상대가 걸고 넘어질 구석을 하나 더 줄이는 거예요. 서명은 필적 감정이 가능하고 도장은 인영 대조가 가능하니까, 두 개가 같이 있으면 "내가 안 했다"는 주장이 훨씬 어려워집니다.
돈이 오가는 계약이면 신분증 사본까지 받아두시고요.
이 글은 작성 시점의 법령과 실무 관행을 기준으로 쓴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세무 자문이 아닙니다. 금액이 크거나 분쟁이 예상되는 사안은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