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증명을 보냈는데도 아무 일이 없었다면
돈을 못 받고 있다고 하면 다들 내용증명을 보내라고 합니다.
틀린 조언은 아닙니다. 그런데 내용증명만 보내고 기다리면 대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강제력이 없는 문서거든요. 상대가 무시하면 그걸로 끝입니다.
실제로 돈을 받아내는 건 그다음 단계부터입니다.
| 단계 | 대략 기간 | 강제력 |
|---|---|---|
| 문자·메일 독촉 | 즉시 | 없음 |
| 내용증명 | 1~2일 | 없음 |
| 지급명령 | 2주~2개월 | 확정되면 있음 |
| 민사소송 | 수개월 | 있음 |
| 강제집행 | 수주 | 실제 회수 |
그 전에, 증거부터
이게 빠지면 뒤가 전부 막힙니다. 받아야 할 돈이 있다는 걸 내가 증명해야 하니까요.
차용증이나 계약서, 거래명세서, 세금계산서, 청구서. 계좌 이체 내역. 돈 얘기가 오간 카카오톡과 문자. 물건을 받았다는 확인.
이 중에서 인수 확인을 받아둔 거래명세서가 가장 셉니다. 세금계산서는 내가 혼자 발행하는 서류라 "물건 못 받았다"는 주장을 막지 못합니다.
종이 서류가 하나도 없어도 포기할 일은 아닙니다. 카톡에 "다음 달에 꼭 갚을게"가 남아 있으면 그것도 증거입니다.
독촉은 기록이 남는 방법으로
전화만 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문자나 메일로 보내면 날짜와 내용이 그대로 남아서, 나중에 "여러 번 요구했는데 응하지 않았다"를 보여주는 자료가 됩니다.
쓸 때는 사실만 적으시고요. 욕이나 협박성 문구가 들어가면 오히려 본인이 고소당합니다. 채권추심법은 폭행과 협박은 물론 반복적인 야간 연락까지 금지하고 있습니다.
내용증명이 하는 일
내용증명이 증명하는 건 하나뿐입니다. 이런 내용의 문서를 이 날짜에 이 사람에게 보냈다는 사실이요. 내용이 사실인지는 증명하지 않고, 법적 강제력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보내는 이유가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소멸시효를 멈춥니다. 받을 돈에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개인 간 대여금은 10년, 상거래 대금은 5년이 지나면 권리 자체가 사라집니다. 내용증명으로 청구하면 시효 진행이 일단 멈추는데, 다만 6개월 안에 지급명령이나 소송으로 이어가야 효력이 유지됩니다. 보내놓고 가만히 있으면 6개월 뒤에 도로 돌아갑니다.
둘째, 상대 태도가 바뀝니다. 우체국 도장이 찍힌 문서를 받으면 "이 사람 진짜 하려나 보다"가 전달됩니다. 여기서 연락 오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셋째, 나중에 소송에서 그림이 좋아집니다. 충분히 기회를 줬는데 무시했다는 게 기록으로 남으니까요.
보내실 때 배달증명을 꼭 같이 신청하세요. 내용증명은 "보냈다"만 증명하고 "도착했다"는 증명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못 받았는데요" 하면 반박할 방법이 없어요. 몇 천원 더 내면 언제 누가 수령했는지까지 기록됩니다. 이거 모르고 보내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출력은 3부 합니다. 상대방 발송용, 우체국 보관용, 본인 보관용. 본인 보관분을 꼭 챙기세요.
여기서부터가 진짜입니다
지급명령. 이걸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법원에 서류만 내면 됩니다. 법정에 나갈 일도 없고 변호사를 쓸 일도 없습니다. 법원이 서류를 보고 상대에게 돈을 갚으라는 명령을 보내고, 상대가 2주 안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확정됩니다. 확정되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이 생겨서 바로 강제집행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비용은 소송의 몇 분의 일 수준이고, 전자소송 사이트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할 수 있습니다. 금액이 명확한 금전채권이면 대부분 됩니다.
단점은 하나입니다. 상대가 이의신청을 하면 그대로 민사소송으로 넘어갑니다. 상대가 확실히 다툴 사안이면 처음부터 소송이 빠를 수도 있고요.
그래도 대부분은 지급명령부터 해보는 게 맞습니다. 이의신청 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거든요.
판결을 받아도 돈이 들어오진 않습니다
여기서 많이들 당황하십니다.
판결이나 확정된 지급명령은 "받을 권리가 있다"는 종이일 뿐입니다. 실제로 가져오려면 집행을 따로 해야 합니다. 통장 압류, 급여 압류, 부동산이나 자동차 압류 후 경매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여기 현실적인 벽이 있습니다. 상대 재산을 내가 찾아야 합니다. 어느 은행에 계좌가 있는지 모르면 압류할 대상이 없어요.
이때 쓰는 게 재산명시신청과 재산조회입니다. 법원을 통해 채무자의 재산 목록을 받아내는 절차인데, 집행 단계에서 막히면 이쪽을 알아보세요.
공증을 받아뒀다면 이 모든 걸 건너뜁니다
차용증을 쓸 때 강제집행 인낙 문구가 들어간 공정증서로 만들어뒀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채무자는 위 채무를 이행하지 아니할 때에는 즉시 강제집행을 당하여도 이의가 없음을 인낙한다."
이 문장이 들어간 공정증서는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집니다. 소송도 지급명령도 필요 없이 바로 강제집행입니다.
공증 비용은 금액에 따라 다르지만 소송 한 번 하는 것보다 훨씬 쌉니다. 큰돈을 빌려주실 거면 처음부터 받아두세요. 나중에 몇 개월과 수백만원을 아낍니다.
묵히면 사라집니다
소멸시효 이야기를 다시 합니다. "언젠가 주겠지" 하고 몇 년을 보내면 권리가 없어집니다.
개인 간 대여금은 10년, 상거래 물품 대금은 5년, 공사대금과 용역대금은 3년, 임금과 퇴직금도 3년입니다.
멈추는 방법은 앞에서 말한 내용증명(그리고 6개월 내 재판상 청구), 지급명령이나 소송 제기, 그리고 채무자가 일부라도 갚거나 채무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게 전략이 되기도 합니다. 1만원이라도 받아내면 채무를 인정한 셈이 되어 시효가 새로 시작되거든요. 전액이 어렵다면 일부라도 받아두세요.
금액이 크거나 상대가 다툴 게 분명한 사안이라면 변호사나 법무사와 상담하시는 게 맞습니다. 여기 적은 건 일반적인 절차입니다.
이 글은 작성 시점의 법령과 실무 관행을 기준으로 쓴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세무 자문이 아닙니다. 금액이 크거나 분쟁이 예상되는 사안은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